맑고 밝은 하늘

낮에 햇살을 받으면서 밖을 걷는데, 뭔가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아, 이게 내가 몰랐던 평일 오후구나.

 

🙋 왜 퇴사를 결심했을까?

나는 비전공자로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다. 입사 후 지금까지 주어진 업무는 어떻게든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했다. 전공자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았기에,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흘렀고, 어느새 맡은 분야에 자신이 붙었다. 혼자서도 출장을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고, 일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회사의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

그동안 익혔던 기술은 더 이상 주력 기술이 아니게 되었고, 새로운 도구와 언어로 기능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사와 동료들도 하나둘 자리를 옮기면서, 팀 내에 남은 인원이 줄었다. 결국 나와 팀장님, 두 사람이 핵심 기능을 맡아 새롭게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기술에 대한 내부 지원도 부족했고, 주 2~3회씩 야근을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어느 순간 내가 번아웃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빠르게 끝냈을 일도 집중이 되지 않아 점점 오래 걸렸고, 사무실은 점점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음에도, 마치 좁은 방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 결정적인 계기

그 무렵, 내가 맡은 기능의 첫 번째 버전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점에 새로운 구성원이 팀에 합류했다. 나는 면접 과정에 참여했는데, 그 분이 자신의 업무 이력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마치 단단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사람 같았다. 반면, 나는 그동안 당장의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쌓아올린 모래성 위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고,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도 없었다.

‘이제는 잠시 멈추고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결심만으로는 행동이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종적으로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바로 연봉 협상이었다.

회사에서는 해마다 한두 차례 성과 평가를 진행했고, 매년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실질적인 보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나의 가치와 실제 대우 사이의 차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결국 면담을 요청해 의견을 전달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기에, 조용히 정리를 준비하게 되었다.

 

🧠 비전공자로서의 개발자 삶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개발자라는 길을 주저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에는 초반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수년간 배운 이론과 개념들을 몇 달의 학원 교육이나 독학으로 단기간에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도 비전공자였지만, 전공자 팀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내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처음엔 분명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새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전공자라면 오히려 더욱 명확한 동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서른이라는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만큼 간절했고, 결국 그 목표는 이루어졌다.

 

🌞 퇴사 후 첫날

오늘은 퇴사 후 첫 번째 날이다. 낮 시간에 밖을 걷는 게 오랜만이었다. 주말이 되어도 밖에 나갈 기운조차 없었던 내가, 햇살 아래 가벼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침엔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그 시간은 평소 출근을 위해 일어났던 시간이기도 했다. 침대 옆에 놓인 실내 사이클 위에서 30분 정도 가볍게 몸을 풀었고, 전날 남긴 마라샹궈와 밥으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먼저 렌즈 교체를 위해 안경원에 들렀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려 다이소와 올리브영에도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는 헬스장에 갔다.

낮 시간의 헬스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평소보다 운동하기에 쾌적했고, ‘아, 이래서 점심때쯤 운동오면 좋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이었는데도 웨이트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오전부터 부쩍 움직인 탓일까? 아무튼, 본격적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동네 카페에 앉아 앞으로의 식단을 정리했다. 트레이너 선생님께서도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시작해보자며, 직접 식단을 짜오라고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식단을 계획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를 넘어서 있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바쁘게 보냈지만, 마음만은 한결 여유로웠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지 기대된다.

 

 

 

“지금 이 기록들이 언젠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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